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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다 내 아들아(창 48:19)

(창 48: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야곱이 나이가 늙었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떠날 때가 가까운 줄 알았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한으로 아들들을 축복하고 요셉의 두 아들도 축복한다. 그런데 장자에게 오른손을 올려서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올려 축복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배려해서 오른손 앞에 므낫세를 앉혔지만 아버지는 손을 엇바꾸어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은 것이다.

아버지의 행동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기뻐하지 않았던 요셉은 아버지의 손을 바꾸려 한다. 에브라임 머리에 있는 오른손을 므낫세에게 옮기고자 한다. 아버지에게 “그리 마옵소서, 장자는 므낫세입니다” 간곡하게 부탁한다. 야곱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버지의 눈이 어두워서 실수로 잘못 손을 올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알고 있었다.

야곱은 요셉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고 대답한다. 분명히 오른손과 왼손을 올려야 할 사람에게 올렸다는 고백이다. 육신의 눈은 나이가 들어 잘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영적인 안목은 명확했다.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장자의 복을 누구에게 베풀어야 할지 명확하게 알았다.

속사람은 날이 갈수록 낡고 부패해지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속사람이 날마다 강건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그 내면의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다. 속사람이 다듬어지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변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 당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화려하고 멋이 있었지만 검은 속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책망하셨다.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책망하셨다.

성도는 겉과 속이 동일한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꾸미기보다는 마음 중심이 변화되어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이다. 내면에 품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는 사람이다. 자기 내면의 자아는 죽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을 닮은 성품으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주를 닮은 성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품이 형성되려면 여러 번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그 행동이 하나의 습관을 형성하고, 결국 그 습관이 성품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행하는 하나의 행동이 시간이 흐르면 성품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이 중요하다. 깨닫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걸음씩 주님을 더욱 닮아가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자꾸 들어본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묵상도 매일 반복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되면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꿈꾼다. 겉 사람은 갈수록 낡아지고 볼품없어져도 속사람만큼은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로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충만하게 채워진 말씀과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사랑만 흘러나오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