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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창 41:38)

(창 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은 바로에게 인정받았다. 불신자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요셉이 꿈을 해석하고, 꿈에 따른 대비책을 내놓을 때 바로는 하나님을 생각한 것이다. 요셉이 하나님이 꿈을 해석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경험한 것이다.

요셉에게 꿈의 해석과 그 꿈에 따른 대비책을 말할 때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임을 안 것이다. 실생활을 변화시키는 지혜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까지 이롭게 하는 지혜이다.

바로만이 아니라 그의 신하들도 요셉을 인정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구별되게 살면 한 사람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감출 수 없다. 홀로 조용히 사는 것 같아도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웃을 보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삶의 행복을 경험한다.

요셉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은 단순히 신앙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에게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믿음이 자신이 이웃의 삶을 이롭게 했기에 불신자의 눈에 광신자로 보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신앙인으로 보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 우리는 은사를 생각하고, 어떤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아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의 작품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은 세상의 강력한 유혹과 공격 중에 더 분명하게 증거된다. 애굽의 문화 중심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성도로서 정체성을 지킨 것이다.

요셉의 정체성을 흔들 요소는 많았다. 감옥에서 총리가 되었다. 삶이 한순간에 달라진 것이다. 결핍의 공간에서 풍요의 공간으로, 누명을 쓴 죄수의 몸에서 인정받는 총리로 세워진 것이다. 거기에 바로는 요셉의 이름을 애굽식 이름으로 바꾼다. 사브낫바네아라고 부른다. 이름의 뜻은 “그 신이 말씀하시기를 그가 살리라”라는 뜻이다. 애굽 방식으로 왕은 축복하며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요셉의 결혼을 하는데 온 제사장의 딸과 결혼을 한다. 온이라는 땅은 태양신 ‘라’를 섬기는 종교중심지였다. 이런 곳에서 종교지도자로 살고 있는 가정의 딸과 결혼했다. 이방신의 영향을 받고, 애굽 문화에 공격받고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름이 바뀌고 삶의 환경이 바뀌어도 요셉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정체성도 흔들리지 않았다.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이름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짓는다. 하나님이 과거의 모든 아픔을 잊게 해 주시고, 오늘처럼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있음을 잊지 않은 것이다. 요셉의 정체성은 노예로 팔려 감옥에 들어가기까지 힘들었던 13년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요셉의 신앙과 믿음의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빚어진 것이 아니다. 긴 시간 훈련된 것이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 우리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도 필연으로, 선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가며, 하늘의 지혜로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님 사랑을 흘려보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내가 있음으로 이웃이 웃을 수 있는 삶,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