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인가 저주인가? (약 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10)
신앙생활에서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람의 거룩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믿는 사람의 변화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마음이 변화되고, 성령이 임재하면 반드시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언어가 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이웃에게 하나님 사랑을 나누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사람의 말은 중요하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의 표현이다. 그런데 소리를 내어 언어와 뜻을 전달하는 혀가 이중성을 갖고 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는 것은 어떤 때에는 선하게, 어떤 때에는 악하게 사용된다는 뜻이다. 이런 언어생활은 마땅하지 않다. 옳지 않다. 바꾸어야 한다. 한 입에서 한 소리가 나와야 한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한 언어가 나와야 한다.
야고보는 샘의 예를 든다. 하나의 샘에서 서로 다른 물이 나올 수 없다. 쓴 물도 나오고, 단물도 나올 수는 없다. 한 우물에서는 쓴 물이 나오면 계속 쓴 물만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만약 단물이 나는 샘물이라면 그 샘은 계속하여 단물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어생활을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변화된 사람이다.
성도가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형제를 저주하고,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많이 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입힐 때 그 중심에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수십 년 우정을 나눈 친구 관계가 금이 가고,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서로에게 남기기도 한다.
성도는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된다. 한 입으로 오로지 하나님의 찬송하고, 이웃을 축복하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한다. 만약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을 판단하고 비방하며 저주한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바꾸라는 것이다. 한 우물에서 쓴 물과 단물이 함께 나올 수는 없다. 거짓 경건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혀가 길들여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혀가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하는데 길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말을 아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꼭 필요한 말을 하려고 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이런 말 저런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때가 조심할 때이다. 말이 많음으로 우리가 실수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은혜를 구해야 한다.
좋은 언어생활, 하나님이 원하시는 언어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마음에 선한 것,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언제나 선한 말들이 나오는 삶을 살 수 있다. 이웃에게 불평하고 비방하는 마음이 생길 때 빨리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우리 마음을 만져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악한 마음이 사라지고 선한 마음이 생기길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주신 작지만 큰 영향력을 가진 혀가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사용될 방법이 무엇인가? 하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언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비결은 성령의 역사뿐이다. 내 힘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이 “오직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 이해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선한 말을 하며 살기 힘들다. 내버려 두면 우리는 언제가 실수하고 폭발한다. 오늘도 말을 아끼고 혀를 제어할 수 있는 하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