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요 11:4)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병들었다. 나사로의 가정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존경했고, 사랑하며 섬기던 가정이다. 항상 예수님에게 관심을 두고 예수님이 방문하실 때마다 극진히 섬겼다. 마르다는 식사를 준비하여 섬기고, 나사로는 친구로 예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던 가정에도 아픔이 찾아온다. 가족 중 한 사람, 나사로에게 죽을병이 찾아온 것이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빨리 오셔서 고쳐 주기를 간구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소식을 듣고도 하던 일을 계속하고,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나사로의 집 방문을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지체한 것이다.
의도적인 지연에는 이유가 있다. 나사로의 질병이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 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질병이 꼭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 질병에 걸림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당장은 아픔 같아도 아픔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나사로의 죽을병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이틀을 지체하신 것은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신 것이다. 죽었지만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심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실제 생명의 주관자 되심을 보여 주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하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모든 일을 펼쳐가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바라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내 힘과 능력만을 생각하며 낙심하고 주저앉을 일도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소망이 생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뜻이 있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에 담을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하늘과 땅이 전혀 만날 수 없도록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이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성도라면 내 생각을 비워내고, 하나님의 생각을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영광을 맛보며 살 수 있다.
이 질병을 통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난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로 나아갈 때를 요한은 인자가 영광을 받으실 때로 묘사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죽음 가운데 부활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한다.
성도의 제일 된 삶의 목적과 가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다. 내게 주신 사명을 묵상하며 오늘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사랑이 오늘 우리가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넉넉히 이기는 힘이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