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죽이자(창 37:20)
(창 37: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요셉이 형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심부름한다. 음식도 전달하고 여러 날 양떼를 돌보기 위해 지친 형들을 위로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멀리서 요셉을 본 형들의 반응은 정반대이다. 아버지 사랑의 증거인 채색옷을 멀리서 보는 순간 형제들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심이 다시 솟아올랐다. 형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같은 마음으로 요셉을 죽이고자 한다.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편애만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꿈 이야기도 불편한 것이었다. 그래서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고, 아버지의 편애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꿈도 깨버리자는 것이다.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그들의 말은 이렇게 해도 꿈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요셉을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멀리서 요셉을 본 형제들은 죽이기를 꾀했다. 꾀한다는 것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논의한 것이다.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은 빠르게 의견을 모았고,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자는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악한 짐승이 요셉을 잡아먹었다고 말하자는 것이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자는 것이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이렇게 악을 논의하고 계획하면서도 양심을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리에 함께 있던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은 불편했다. 르우벤이다. 맏형으로 책임감도 있었을 것이지만 적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형제인데 죽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생명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다. 생명의 주관자만이 우리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 그래서 르우벤은 생명을 해치지 말고 마른 구덩이에 던지자는 것이다. 르우벤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나중에 요셉을 형제들 몰래 구출하여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형제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서 요셉을 살릴 궁리를 한 것이다.
형제들은 르우벤의 제안을 따라 요셉을 만나자 말자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진다. 요셉이 가까이 오기 전에 이미 요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형제들의 합의는 끝난 것이다. 계획한 대로 요셉이 가까이 왔을 때 주저함 없이 바로 악한 계획대로 시행한 것이다. 악한 생각, 죄는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욕심을 품으면 죄를 짓게 되고, 죄는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끌고 간다.
죄는 품고만 있어도 자라는 성격이 있다. 악한 생각은 들어올 때 끊어 버려야 한다. 악한 것은 그 모양도 흉내 내지 말고 버려야 한다. 때를 놓치면 죄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양심의 소리를 들려주실 때 조용히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죄를 대적하고 물리쳐야 거룩함을 지킬 수 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바라본다. 말씀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교훈과 책망과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은 말씀이다. 나는 무엇을 꾀하고,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피곤하고 힘든 일들이 반복될 때 나태하거나 흐트러진 삶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길 기도한다. 말씀을 가까이하며, 말씀이 힘이며, 생명이며, 내 삶을 이끌어가는 나침반임을 인정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