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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름을 내자(창 11:4)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은 오래전에 나타났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기 존재를 드러나게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그런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바라볼 때 보기에도 좋았고 소원을 이루어줄 만큼 탐스럽게 보여서 따먹는다.

사탄의 유혹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욕망이 숨겨져 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아도 옆에서 누군가 자극하면 금방 활동하는 것이 숨겨진 욕망이다. 문제는 혼자보다는 몇 사람이 의견을 모으면 그 욕망은 더 큰 힘이 된다. 하와도 자신만 선악과를 따먹고 끝난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아담도 먹게 한다. 함께함으로 자기 욕망을 더 확실하게 드러낸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그렇다. 한 번 이름을 내고 나면 그 이름을 주목받기를 원하고, 이름이 알려지길 원한다. 시날 평지에 탑을 쌓았던 사람들도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탑을 쌓았다. 하늘 꼭대기까지 높아지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업을 통해 하나로 뭉치고, 과업을 중심으로 흩어짐을 면하는 것이다.

본래 이들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목축하며 살던 나그네였다. 나그네 인생들이 시날 평지에 도착해서는 멈췄다. 거류했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 생활을 한 것이다. 나그네로 살아야 할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하면 무언가를 더 가지려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그네는 돌아갈 본향을 항상 생각한다. 하지만 정착민은 자기가 사는 곳에 영원히 머물고자 한다.

영원히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이웃과 경쟁하는 삶을 낳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더 쌓는 삶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름을 드러내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부패한 본성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 본향 시민답게 살기를 원하신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정착하며 쌓는 삶이 아니라 흩어주며 나누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고 하나 되는 길은 다르다.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후손들이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은 노아가 의롭게 살 수 있었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구별되게 살았다. 그의 가족도 함께 구원받았다. 후손들이 번성하고 계속 이동하며 한 민족을 이루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항상 먹고살 만하면 사람들은 다른 일을 생각한다. 의식주가 해결되고 나니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살만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사는 길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자랑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바울이 왜 약한 것을 자랑하고자 힘썼는지 알 것 같다. 그 길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길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고, 과업을 통해 사람들이 함께 모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십자가와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는가? 사탄의 공격과 부패한 본성을 그냥 방치하면 죄를 짓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 행동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흩어짐을 면하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