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유산(스 9:12)
(스 9: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에스라는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악을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 이방인과 통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신앙 부흥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회복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단호하게 이방인과의 통혼을 끊으라고 명령한다. 이방의 딸들에게 아들들을 내어주지 말라고 한다.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문제들이 그 배후에 숨겨져 있다.
통혼의 위험성은 무궁무진하다.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유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이 공유되기도 하지만 이방의 신도 공유가 된다. 거룩한 습관도 공유되지만 가증한 습관도 공유가 된다. 결국 거룩한 것과 가증한 것이 섞이게 되고, 하나님과 이방 신이 섞이게 된다. 하나님은 섞이는 것을 싫어하신다.
하나님과 이방 신이 섞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을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부패한 본성은 거룩한 것보다는 가증한 것에 더 끌리고, 가만히 두면 악을 행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섞이면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을 더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악한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심지어 이방인들의 평화와 행복을 간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것도 영원히 이것은 추구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방인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이방인의 평화와 행복을 간구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할 것에 대한 경계이다.
이방인들의 행동과 그들의 신앙을 부러워하거나 따라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풍요와 쾌락을 쫓는 이방인의 습관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풍요와 쾌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구별되게 사는 것이다. 풍요로 인해 범죄하고 악을 행하는 것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라는 요청이다.
이방인들의 우상과 가증한 행동을 끊어내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고, 바른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왕성하여지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라고 하신다. 우상을 숭배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가 행한 것을 남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남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야 한다. 우리의 노력과 열심으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힘써도 하나님의 도움, 은혜가 없이는 신기루 같은 것이 된다.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누릴 수 있고 또 그것을 자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다.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유산은 하나님 신앙이다. 바른 믿음이다. 신자는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은혜로 알고, 그 은혜를 힘입어 살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사는 것이다. 부모의 삶은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게 되어 있다. 자녀에게 세상의 풍요와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바른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 주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