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성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따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할 때 나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고, 부패한 본성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고 간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이다.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내 생각과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나를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성도이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 그리고 찾으신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만 의지하는지를 보신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교묘하게 세상의 것도 의지하는 사람을 살피신다. 양다리를 걸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속이는 사람을 분별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의도까지 살피신다. 두 마음을 분별하신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가 항상 가져야 할 믿음이 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연관 있다. 우리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를 찾는 사람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주시고, 우리의 생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다. 우리가 점검할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지, 아니면 내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의지하는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사 왕은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사람을 의지한다. 이스라엘이 공격해 올 때 아람 왕 벤하닷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도움을 요청한다. 구스 사람의 군대가 공격해 올 때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때와는 달리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계획이 성공할 때이다.

아사 왕은 벤하닷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아내고, 이스라엘 바아사 왕이 라마를 건축하려고 준비한 돌과 재목을 가져와서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한다. 자기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결국은 하나님을 멀어지게 만든다. 하나님을 버리거나 하나님이 이외의 것을 교묘하게 붙잡았을 때 실패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인간적인 성공은 유사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적당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내가 생각한 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양다리와 반심을 믿음이 아니라고 충고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핍박한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지자를 옥에 가둔다. 회개할 기회를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다. 하나님으로부터는 갈수록 더 멀어지고 악한 행동만 한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당하게 믿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발에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하게 되었을 때 여전히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원을 찾아간다. 발에 든 병이 생명을 위협하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잘못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살피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믿고 하나님만 붙잡고 나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