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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한 사람이 구원받도록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택하심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목으로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에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택하심을 안다고 표현한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택하심을 알 수 있었을까? 우리도 바울처럼 ‘택하심을 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5절이 ‘이는’으로 시작한다. 이 단어는 이유를 표현하는 접속사이다. 바울이 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❶복음이 말로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의 말은 그냥 사람의 말이 아니라 말씀을 가리키는 로고스이다. ‘이른다’는 뜻은 ‘등장하다, 나타난다’라는 뜻이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전달된 복음은 그냥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 어떻게 나타났는가?

❷복음이 능력으로 나타난다. 복음은 능력이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복음은 운동력이 있어서 사람을 찔러 쪼개며 대대적인 수술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복음은 철저하게 우리를 하나님 말씀 앞에 세운다.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하신다.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은 확실하게 우리를 변화시킨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7) 복음이 우리를 성도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한다.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

❸복음이 성령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복음을 나눌 때 복음은 단순히 전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교제가 아니다. 복음을 나눌 때 그 사이에는 반드시 성령이 계시다. 성령께서 일하심으로 복음이 한 사람의 삶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복음이 한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철저하게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가 나타났다는 뜻이다. 성령의 열매가 맺힌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의 열매는 철저하게 인격의 변화를 가져온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우리들의 인격에 맺히는 열매이다. 인격이 다듬어지고 성품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이다. 개개인의 변화된 인격, 하나님의 닮은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닮은 인격은 결국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어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이 임하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한다. 성령이 임하면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그 입술을 열어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역이 시작된다.

❹복음이 큰 확신으로 나타난다. 확신이라는 단어는 ‘신뢰’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 안에 확신이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적으로 신뢰하고 말씀대로 사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참 믿음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 힘들 때나 좋을 때나 내 삶의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나님께 내 삶 전부를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때로 모험이다. 내 모든 것을 걸만한 확신이 있어야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❺사람들 사이에서 어떠한 사람이 된지 알 수 있도록 나타난다. 택하심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맺힌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수 있는 방법은 그 나무에 맺힌 잎, 꽃, 열매를 보는 것이다.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를 보면서 이웃들이 우리가 성도인 것을 알고 좋아하는가? 아니면 성도라는 사실 때문에 놀라고 질색을 하는가? 요즘 성도라는 이름이 빛을 잃어간다. 가짜 성도들 때문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는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자꾸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택하심의 증거들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로서 이타적인 삶이 아니라 이기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증거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살자. 복음의 증거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도록 살자.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어,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하루 삶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