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 중 하나를 언급하는 말씀이다. 십사만 사천 명에 속하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은 입에 거짓말이 없는 사람이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속여서 자기 이익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 진실한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다. 어떻게 거짓을 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투명하다, 믿을 만하다”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정직은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 인간관계에서 꼭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정직하게 살기가 쉽지 않다. 부패한 본성이 자연스럽게 거짓을 말하게 한다.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말한다. 자신을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거짓말의 더 큰 문제는 작은 거짓말들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작은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큰 거짓말을 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큰 거짓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반복하면 타성에 젖게 되고, 감각이 무뎌진다.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내면의 양심이 말하는 소리조차도 듣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선과 악을 판단하신다. 특히 거짓말은 사탄의 전유물이다. 거짓의 아비가 사탄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에 익숙해지면 사탄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거짓말은 또 다른 측면은 핑계이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 합리화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내가 스스로 결정하게 진실을 말하면 된다.
우리가 좀 더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정직하게 살기를 소망하고 끝날 것이 아니다. 정직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다짐을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회개해야 한다. 야고보는 동물처럼 입에 재갈을 물리라 한다. 입술의 파수꾼을 세우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정직한 언어생활은 회복되기 어렵다.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힘든 부분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거짓말이다. 흔히 말하는 하얀 거짓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그런 거짓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도 진실한 언어생활은 아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무엇을 얻고자 그러는지 되물어야 한다. 숨겨진 의도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직함이다.
거짓말과 함께 흠이 없는 자라고 했다. 흠이 없다는 것은 책망받을 만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누가 흠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한 사람도 없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고백했다. 죄인이 의롭게 사는 길은 구속의 은혜를 덧입는 것이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지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정직하고 진실한 언어생활을 하기 원한다. 그리고 이런 언어의 정직함이 온유하게 나누어짐으로 이웃을 평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를 소망한다. 성품이 성령으로 다듬어지고, 말씀이 삶 가운데 살아 있기를 기도한다. 입술의 파수꾼을 세워서 더러운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깨끗한 말을 하며 성도답게 살기를 기도한다. 말 한마디의 위력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