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는 로마 황제숭배의 중심도시였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를 받을 때 일본 천황을 숭배하게 했던 것처럼 로마는 지배하는 나라들과 시민들에게 황제숭배를 요구했다. 로마 제국은 개인 무슨 종교를 믿든지 상관하지 않고 한 해 한 번씩 “황제는 주님이시다”라는 공언하게 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기독교 신자들을 이런 공언을 할 수 없었다.
자기 믿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힘든 일이며, 고난이다. 당시 서머나의 상인들은 사업 번창을 위해 공동의 제사를 위해 돈을 거두었는데 기독교인들은 이런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경제적으로도 심한 궁핍을 겪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누리는 안전과 부요함을 누릴 수 없었다.
이런 서머나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서머나교회가 겪고 있는 박해를 아시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시는 말씀이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생명의 주관자라는 말씀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강조함으로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살게 하는 것이다.
서머나교회 칭찬만 받은 교회이다. 그들은 환난과 궁핍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 세상의 부요함을 추구하지 않고 믿음의 부요함을 추구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들을 향해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부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의 부가 중요하다. 사탕의 방해와 공격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선택을 하는 삶이 중요하다.
성도의 부요함은 이 땅의 재물을 얼마나 가졌느냐로 평가되지 않는다.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하나님 앞에서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은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고난이다. 그래서 서머나교회가 잠시 환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마귀가 장차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우리가 고난을 겪을 것을 아시지만 그 고난을 받지 않도록 막아주시거나, 고난을 피하게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이 땅에서 얼마나 잘 살게 하느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기를,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어떤 시험과 환난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원하신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당당한 성도가 되길 원하신다. 진정한 평안은 아무런 풍랑이 없는 바다가 아니라 풍랑이 일어도 요동하지 않고 묵묵히 가야할 길을 가는 평안이다. 고난은 성도가 성도답게 사는 길이다.
이 땅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천국의 영광과 비교되지 않는다.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하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믿음의 길을 걸으라고 하신다. 죽음이 우리를 위협해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만 붙잡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약속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