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1: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하니라
페르시아를 통치하는 아하수에로 왕이 조서를 내린다. 왕후 와스디를 폐위하는 조서이다. 왕이 수도 수산성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잔치를 하면서 왕후 와스디를 초청한다. ‘그녀의 아리따움’을 잔치에 참석한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려는 목적이다. 잔치의 화려함을 통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을 자랑하고 싶었고, 왕후의 아름다움을 통해 자기 능력을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명령을 왕후 와스디가 싫어했다. 단순히 마음으로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왕명을 거절했다. 왕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떨어졌다고 생각한 것 같다. 왕이 화가 나서 마음속이 불이 붙는 느낌이었다. 왕은 이런 마음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심 끝에 잔치에 참여한 지혜로운 지방관 신하들에게 왕의 전례를 묻는다.
그들 중 므무간이라는 신하가 신하들의 뜻을 모아 왕에게 제안한다. 왕이 조서를 내려서 왕후 와스디를 폐위하고 나라의 근간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이런 조서의 이유를 제시한다. 왕후가 왕의 명령에 거역한 일이 소문 날 텐데, 그러면 나라의 모든 여인도 남편을 무시하고 가정의 법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폐위된 왕후의 자리는 더 나은 여인을 뽑아 대신하게 하라는 제안이다.
왕은 이 제안을 좋게 여기고 전국에 조서를 내린다. 신하들 역시 남자이다. 이 일이 자신들의 부인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쳐서 부인들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그런 이유로 이런 조서를 제안한 것이다. 누구든지 남편들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될 것을 선포한 것이다. 남자라는 지위,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여인들, 아내를 억압하고 강제하는 행위이다.
조서를 반포하는 목적이 분명해 보인다. 조서를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고, 아내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 하는 것이다. 나라의 법도를 운운하며 이기심을 드러낸 것이다. 자기 권위를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존경은 힘의 강제력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존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강력한 힘 앞에서 잠시 머리를 숙이는 것은 존경이 아니다.
하나님은 부부를 돕는 배필로 주셨다. 돕는 배필은 나의 필요를 채우라고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서로를 살피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줌으로 온전한 하나, 한 몸이 되게 하셨다. 남편의 목숨을 건 사랑에 아내가 존경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결코 아내는 남편의 부속물이 아니다. 필요할 때 불러내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부부를 어느 한 편에 종속되는 존재로 세우지 않으셨다. 서로의 역할과 질서는 있어도 그 질서가 상하의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이유로 상대를 협박하거나 물리적인 힘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부부는 한 몸이다. 서로가 하나임이 잊지 않아야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부부관계에 적용되는 진리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나는 아내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가. 돕는 배필로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다시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내 안의 이기심이 아내를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대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하늘의 은혜를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