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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실제적인 결정을 한 사람이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무리의 고소 고발을 따라 예수님을 심문한다. 그는 심문을 통해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할 죄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는 풀어주지 못한다. 주저한다. 백성들이 큰 소리로 예수님의 죄를 묻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향한 백성들의 인기가 걱정되었다.

세상에는 이해 안 되는 일들이 많다.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펼쳐지는 일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성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원리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필요와 요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옳은 일, 법의 기준, 진리를 따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필요와 인기 관리 차원에서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내어준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고소한 사람들의 말과 같은 죄는 없었다. 빌라도는 죄 없음을 확인했기에 헤롯에게 보내어 심문받게 했다. 자신의 판결이 잘못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예수님에 대한 고소 사건이 자신에게 돌아왔고, 세 차례 한 심문 결과는 동일했다. 그런데도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한다. 무엇이 빌라도를 넘어지게 했을까?

사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우리를 공격한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공격한다. 빌라도의 약점은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정치인으로서 민심, 사람들의 인기가 필요했다. 군중의 필요도 채워주고 예수님도 풀어줄 수 있는 묘수를 찾지만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군중은 예수가 아니라 민란을 선동한 바라바를 선택했다. 악과 타협하면 안 된다.

죄가 없음을 확인했다면 무죄를 선언하고 풀어주면 된다. 빌라도는 우유부단했고, 그렇게 결정을 내릴 용기가 없었다. 자신의 권한과 권리를 가지고 정의를 위해 사용하지 못한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때린 후에 풀어주겠다고 말을 한다. 그래도 고소했으니 그 고소에 대한 책임을 조금만 물어서 매질하겠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결정이다.

죄가 없는 사람을 때려서 풀어주면 안 된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면 안 된다. 세상의 법정은 무죄를 선고하려 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사형 선고를 요구한다. 유대인의 종교법정이 세상 법정보다 더 악하고, 불의하다. 왜 세상보다 더 공의로워야 하는 교회가 더 악하고 불의하게 행동하는가? 사탄의 유혹과 훼방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신앙생활을 하려 하면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다. 죄는 성도를 넘어뜨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하루를 살아갈 때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진리 안에 깨어있어야 한다. 믿음의 결정을 해야 할 때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다. 적당한 타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진리를 따르는 삶에서 구별된다. 진리를 따르면 자유로움이 있고, 그 자유로움으로부터 거룩함과 화평함이 나온다. 선택의 순간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의와 불의가 부딪힐 때 주저하지 않고 의를 선택해야 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사람이 성도이다. 성도답게 복음과 진리를 드러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