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1: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인생살이를 결산하는 날이 있다는 것이 기쁜 일인 사람도 있지만, 또한 근심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생활한 사람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산 사람들은 기대하며 결산할 날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어도 여러 가지 실수와 실패를 한 사람들은 걱정할 것이다. 그 실수와 실패가 어떻게 판단될 것인지 두렵다.
두려움은 죽음의 그림자이다. 눈앞에 죽음이 다가올 때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거부하고 분노한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은 원치 않아도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질병의 고통과 아픔은 죽음을 미리 맛보는 행위이다. 그 고통이 심화되면 결국 죽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막상 죽음이 찾아올 때 죽기를 무서워한다.
생각만으로 겁나는 일이 있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누구나 실수하지만 그 실수에 대한 대가는 치르지 않았으면 한다. 잘못한 사람에게 징계는 정당해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다. ‘천재지변’과 같이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도 두려움을 만든다. 그런데 종말에 이런 일들이 다양하게 일어날 것을 말씀한다.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면 무섭다는 것이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들이 흔들리는 것이다. 일월성신이 이상하다. 흔들리고 평소와 다른 징조가 보인다. 지진과 해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폭염이 반복된다. 기후 위기가 현실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이지 않고 평소보다 훨씬 더 심하다. 그 정도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앙은 생각만 해도 무서움이 생기고, 무서움이 심하여 기절까지 하게 한다. 사람의 생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참혹한 일들이 찾아온다. 종말에 있을 일들은 결코 평범한 일들이 아니다. 생각을 뛰어넘어 예측 불가능하다. 겁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이렇게 험악한 시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심으로 그날을 미리 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준비하는 만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대비하고 맞이하면 마음의 혼란이 줄어들고, 기절을 피할 수 있다. 다급하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차분히 맞이하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쉴 십자가 그늘로 초청하신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을 곳, 기절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십자가 은혜의 자리이다. 주님 품 안이다.
누구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와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내주하여 계신 성령께서 감동 감화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영생 복락을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유일하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과 연합하여 사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가 지은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셨다. 주님의 사랑과 십자가 은혜를 묵상한다. 오늘 하루도 주님 품 안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잊지 않고, 내일을 위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