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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는 아버지의 비유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다. 불효하고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버지 이야기는 둘째 아들을 야망으로 시작된다. 자기에게 올 유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잘살아보겠다는 계획이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서 유산을 달라고 요청한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계시지만, 미리 유산을 상속받았다(12절). 유산을 상속받은 후 며칠이 되지 않아 모든 재물을 다 모아 집을 떠난다. 유산 상속을 재촉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품, 아버지의 그늘에서 떠나 자기 마음껏 살고 싶었다. 유산을 상속받아 집을 떠나면 자신만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가 떠난 곳은 가까운 곳이 아니다. 먼 나라이다.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몸은 떠났지만 가족을 생각할 수 있고, 마음만은 아버지 집에 있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완전히 집을 떠나는 경우이다. 아버지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 최대한 먼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돌아올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여 잘살아보겠다는 의지이다.

처음 시작은 멋있고 화려했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순조롭고 멋있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허비하는 삶이다. 낭비하는 삶이다. 허랑방탕한 삶이다. 육체의 쾌락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오래 가지 못할 삶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아들은 그런 삶을 추구한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자원은 한계가 있다. 무한정하게 느껴져도 언젠가는 반드시 고갈되고 끝나게 되어 있다. 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 없앤 후에”(14절) 라고 기록한다. 자신이 가진 자원은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없애는 일만이 아니라 어떻게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끝을 생각하지 않고 허비하는 삶은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는 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끝을 모르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끝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종말을 준비하는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원으로 무엇을 했는지 셈을 하는 날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해야 끝을 생각할 수 있다. 내 힘과 내 방식으로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끝을 놓치기 쉽다.

신속한 발걸음에 모든 것이 멋있게 시작했어도 끝을 생각하지 않은 발걸음은 무겁게 마무리된다. 하루의 삶에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할 분은 아버지 하나님뿐이다. 내 힘과 내 계산으로는 살면 버틸 수 있는 날은 ‘며칠’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는 ‘영원’이다. 며칠을 넘어 영원을 누리는 삶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을 품고, 영원을 기대하며, 영원을 누리는 삶이 어디에 있는가? 아버지 집이다. 하나님 아버지 품이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근시안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내일을 보길 원한다. 시선이 땅에만 고정되지 않고 하늘을 보길 원한다. 오늘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기대하는가?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바로 그곳에서 오늘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