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성도에게 기도는 영적인 호흡과 같은 것이다. 호흡이 멈추면 죽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영적 호흡이 끊어진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다. 성도라면 마땅히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기도에 대해 예수님은 여러 번 가르치셨다. 우리가 기도할 대상은 누구인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그 내용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손수 본을 보여 기도를 가르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잘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우리의 기도를 더 정확하게 가르치시기 위해 한 예를 들어 가르치신다. 늦은 밤중에 친구가 찾아와 떡 세 덩어리는 꾸어달라고 요청한다. 이유가 있다. 친한 친구가 여행 중에 찾아왔는데 자기에게 먹일 것이 없기에 꾸어달라는 것이다. 꾸는 사람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은 벗이기 때문이 아니라 간청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간청함을 인하여”란 무슨 뜻일까? 우리가 기도할 때 포기하지 말고 간절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말인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벗 됨은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간청함은 관계와 상관없이 간절한 심정의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동시에 안 되면 떼라도 써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간청함을 인하여” 요구대로 준다는 표현은 떼를 써서 하나님께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도 자주 “지성이면 감천”이듯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맞는 듯하지만 조심할 부분이 있다. 우리가 떼를 써서 하나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이며,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여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다. 그리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고,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마치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시듯, 들의 백합화를 아름답게 옷 입히시듯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염려를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 들에 핀 백합화보다 더욱 귀한 존재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책임져 주실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이다. 신뢰가 흔들리면 기도도 흔들리고, 생활도 흔들린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책임지고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심을 믿어야 한다.
‘간청하라’는 것은 ‘떼를 쓰라는’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간청한다는 언어적 의미는 ‘수치심을 거부한다, 후안무치를 거부한다’라는 뜻이다. 자기 벗 됨을 인해서는 거절해도 꾸는 사람이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그의 명예를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것이다. 악한 인간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도 구하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 되심 때문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아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다. 내 방식과 노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하늘의 은혜를 구한다. 오늘도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통해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영혼의 호흡, 기도가 풍성해지고 매 순간 들숨과 날숨을 통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