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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누구나 평안한 삶을 소망한다. 평안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도 한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관계의 불편 함을 해결하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양보하기도 한다. 때로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안이 주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평안은 바른 관계에서 흘러나온다. 관계는 서로 다른 둘 이상이 존재해야 생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법은 나 혼자만 잘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바른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하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는 못 맺는다고 하여도 적은 되지 말아야 한다.

관계의 해결은 서로를 배려하는 용서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못한 것은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허물을 들추어내고 정죄하면 관계는 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관계도 허물을 언급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 하면 깨어진다. 용서가 오히려 상대방의 그릇된 행동을 바꾸고, 서로 바른 관계에 도달하게 한다.

용서의 크기가 감사를 결정한다. 자신이 죄인들 가운데 가장 우두머리라고 생각한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힘써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서로의 관계를 해결해 주시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평안은 한계가 있다. 불완전한 평안이다. 언제 깨어질지 알 수 없는 평안이다. 외부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 진정한 평안은 세상의 방식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참된 평안이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환경을 뛰어넘고, 그 환경을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가져다줄 수 있다. 세상에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누군가?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참된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자신의 선하신 뜻을 따라 섭리하시는 하나님만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믿음으로부터 참된 평안이 온다. 죄 많은 여인의 헌신을 받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니 “평안히 가라” 말씀하신다. 믿음과 구원, 그리고 구원받은 삶에서 흘러나오는 평안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은혜로 주어진 구원’이 우리 삶에 ‘평안’을 가져온다. 내 노력으로 얻은 평안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구원받았다. 그 구원이 참된 평안을 가져다준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깨어진 관계를 바르게 잡아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참된 평안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신다. 오늘도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기대한다. 주님이 은혜로 베풀어주시는 평안을 경험하며 살기 위해 예수님을 가까이하며, 내 안에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린다. 성령이 인도하며 교훈하시는 대로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길 기도한다. 또한 그 평안이 내게로부터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사랑을 나누는 하루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