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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시며 백부장의 믿음을 평가하시는 말씀이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셔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다.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면 그대로 이루어짐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런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보지 못한 믿음을 이방인이 가지고 있다고 칭찬하신 것이다.

백부장은 이런 믿음을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의 일상생활의 경험이 어우러져서 영적 통찰력으로 드러난 것이다. 백부장은 자신이 듣고 믿는 바에 따르면 평범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도 자기 손 아래 있는 사람에게 명령하면 이루어지기에 얼마든지 예수님도 말씀으로 이루실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주님은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 하였다. 우리 생각에 불가능한 일들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바른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려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은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의 열매를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섭리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축소하거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다.

성도답게 살아가려 할 때 매 순간 점검해야 할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말씀과 뗄 수 없고, 그 믿음이 드러나는 현장이 우리 삶의 자리이기에 일상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 예배당 안에서 고백한 믿음이 생활 현장에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백부장의 믿음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무엇보다 종의 질병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믿음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과 연결되게 되어 있다. 백부장은 자신이 가진 믿음을 인간관계를 통해 드러내 보였다. 당시 종은 물건처럼 취급되던 때이다. 하지만 백부장은 그런 종을 사랑했다. 한 인간을 존중하고 바른 자세로 대한 것이다. 세상의 문화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하지 않았다. 자기가 믿는 것을 인간관계에 적용하며 산 것이다.

유대인 장로를 예수님께 보낸다. 오셔서 병든 종을 치유하여 주시길 간청한다. 백부장은 이방인이다. 유대인 장로가 손수 심부름하며 간청하는 것을 보면 그는 자기가 지배하는 나라의 백성과도 바른 관계를 맺은 것이다. 힘으로 지배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문화를 존중하고 사람을 존중했다. 그러니 유대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준 것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생활 중에 믿음이 드러나고, 믿음의 삶이 증거되길 소망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매일 말씀을 가까이하며 말씀 묵상을 하는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오늘을 살아갈 지혜와 힘을 얻게 된다면 더욱 가까이해야 할 것은 말씀이다.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그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 확신이 있기를 소망한다. 작은 믿음일지라도 오직 믿음으로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