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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야의 대를 이은 엘리사는 엘리야가 행한 것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행한다.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의 나쁜 물을 고친다. 엘리사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엘리야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엘리사와도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일꾼을 세워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할 때 그냥 버려두지 않으신다. 함께하며 필요한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 벧엘의 작은 아이들이 나아와서 조롱한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그런데 이런 행동을 한 아이들에게 엘리사는 저주를 한다. 그리고 그 저주가 능력을 일으켜 숲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아이들을 죽인다. 한두 명이 아니다. 4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벧엘 사람들에게 비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엘리사의 외모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엘리사의 머리카락이 없음을 조롱한 사건이 아니다. 만약 외모에 대한 조롱 때문에 일어나 저주라면 문제가 있다. 엘리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사로이 사용한 것이 된다. 그런데 엘리사에게 능력이 있어서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엘리사를 통해 일을 행하실까? 먼저 ‘작은 아이들’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어린 아이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청년세대, 젊은이들을 주로 가리키는 단어이다. 12세에서 30세의 사람들이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외모 때문에 조롱할 수 있다. 하지만 청년세대라면 단순히 외모만을 보고 조롱하는 말은 아닐 것이란 말이다.

두 번째 ‘벧엘’이라는 도시의 배경이다. 벧엘은 야곱이 환상을 보고 단을 쌓은 하나님의 집이다. 그런데 이 벧엘은 분열 왕국 시대 우상숭배의 본고장으로 세워졌다. 야곱의 벧엘 환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며, 이스라엘의 신앙이 다져진 곳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그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남 유다로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을 그곳에서 우상 숭배하게 만들었던 곳이다.

벧엘 사람들은 우상숭배와 관련한 경제활동을 하고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예배하러 오는 순례자들(우상숭배자), 관광하는 사람들(성지를 둘러보려는) 여러 사람의 방문이 잦았을 것이다. 그들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의 방문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대머리 선지자여 “올라가라”, “꺼져”라고 외치는 것이다.

단순히 엘리사를 배척한 것을 넘어서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메신저를 배척한 것이다. 즉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은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가 좋다, 하나님이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대로 살란다. 괜한 헛수고 하지 말고 ‘꺼져’”라고 외치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기보다는 자기의 이익과 편함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배척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는 누가 있는가? 하나님인가 세상의 신인가? 나의 생명의 주권자는 누구신가? 나는 어떤 기준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세상과 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일하며 살아가는 이유를 점검한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나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길이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