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렘 50: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고 기억하신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지만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신다. 심판 중에도 내 백성이라 말씀하시고, 나의 소유라고 말씀하신다. 바벨론이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

바벨론의 악행과 교만을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심판 가운데 완전히 멸망하게 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처럼 남겨 두었다가 다시 회복하게 하는 나라도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은 백성이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돌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이 돌보시는 자에게도 죄가 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죄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죄로 오염된 우리를 마음이 우리를 죄 가운데로 이끌어 간다. 문제는 하나님 백성일지라도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심판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남기는 자가 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소유를 삼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택하신 사람들을, 하나님이 남기신 자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신다. 다른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긍휼이다. 은혜이며 은총이다.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노략질했던 나라들은 심판하신다. 앗수르를 심판하시고, 바벨론을 심판하신다. 그들이 살아가던 땅을 황무지가 되게 하고 황폐하게 하여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심판하신다. 심판의 때 이스라엘은 은혜를 덧입히신다.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나라를 회복하게 하신다. 심으시고 다시 뽑히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이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용서는 불완전한 용서가 아니다. 완벽하게 지우시고 잘라내어 버리는 용서이다. 지은 죄를 찾고 또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완벽하게 지은 죄를 흔적도 없이 해결해 주셨다. 깊은 바다에 던지시고 다시 찾을 수 없게 하셨다.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할 수 없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완벽한 용서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때가 정해져 있다. ‘그날 그때’가 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때가 확정되어 있다. 우리도 날마다 우리를 완벽하게 용서하실 ‘그날’을 사모한다. 예수님이 심판의 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날이다. 우리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시고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실 그날이다. 구원의 날이며 회복의 날을 사모한다.

오늘 사람답게 살고 성도답게 살 힘의 원천, 내 삶의 근거가 나에게서 나올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서의 은총이다. 한량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고백을 붙잡고 우리 죄를 깨끗이 씻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전하며 살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삶과 입술로 전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