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6: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귀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 또 그와는 달리 그 말씀을 무시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계1:3).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
존중하고 귀히 여긴다는 것은 가까이하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좋은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 말씀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말씀은 단순히 공부나 연구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삶의 지침이다.
우리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 순간에 다시 읽고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고, 인도자가 되어야 믿는 사람의 삶이 살아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기준으로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은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은 좋아하고, 마음에 새기려고 한다.
믿는 사람답게 살려고 하면 복을 약속하시는 말씀보다 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더 마음에 새겨야 한다. 세상의 복과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복은 구원의 복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삶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세상의 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혼동하는 것이다.
구원의 복락과 함께 세상의 복도 함께 받으면 제일 좋은 모습이 될 것이다. 실제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복을 내려주신다. 그러나 모든 믿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하시지는 않는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 중에도 재물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고, 성경의 예를 살펴도 하나님의 잘 믿는대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더 쉽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인 돈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셨다. 우리가 가진 돈과 소유를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헌신한다. 때로는 몇 푼 안 되는 동전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헌신을 받으신다.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이웃과 나누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의 소유를 내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해야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다.
여호야김 왕은 자신이 듣기 싫은 말씀은 면도칼로 베어 화롯불에 던져서 불태웠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지울 수는 없다. 하나님은 다시 예레미야에게 불태운 말씀을 기록하라 하신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온전히 이루어진다. 말씀은 오히려 살아 운동력이 있어 우리들의 심령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수술한다. 변화시켜 간다. 그래서 그 말씀에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진짜 성도이다.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길이 생명의 길이며,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는 길이다. 오늘도 그 길을 걷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소유를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