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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1: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율법에 열심 있는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 악한 감정을 품었다. 이방의 유대인들을 흔드는 사람으로 여겼다. 모세의 율법이 쓸모없다고 폐기론을 주장하고, 할례와 유대인의 관습을 행하지 못하도록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오해한 것이다.

바울은 율법 폐기론자가 아니다. 율법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선생이지만 구원에 이르게는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자기도 모른 채 율법을 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구원의 길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삶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지킬 수 없다. 인간 본성이 부패하여 율법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리에 떨어졌다. 입술로는 사랑한다고 말할지 모르나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그 사랑을 다 실천하지 못한다.

율법에 철저하게 사로잡힌 유대인들은 온전한 율법 준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할례는 당연히 해야 하고, 유대인의 관습은 율법의 시대적 적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율법과 그 율법을 지키고자 힘쓰는 유대인들을 비방하고,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주장하며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진심을 듣기도 전에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유대인이 그들의 신앙을 위해 율법과 함께 견고히 붙잡은 것은 성전이다. 거룩한 성전을 구별하기 위해 많은 규례를 정하고 그대로 지키도록 요구했다. 그런데 바울이 그렇게 거룩한 성전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헬라인을 데리고 들어갔다고 오해한다. 한 가지를 오해하니 하지 않은 일도 한 것처럼 여기며 오해한다.

사람의 행동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까지의 이해로 다른 행동들도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을 이해할 때 소문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그 소문이 진짜인지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문은 대부분 왜곡된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부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꾸며지기도 한다. 반드시 처음 시작된 이야기를 살피고 확인해야 하는 이유이다.

좋은 소문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모범적이라는 소문이다. 이런 소문은 더 멀리 퍼져갈수록 좋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가 나쁜 소문이 아니다. 좋은 소문이라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신다.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은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삶이다. 착한 행실이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며 좋은 반향을 만들어 낸다.

나쁜 소문을 만들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장점을 칭찬하며 좋은 소문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오해는 더 큰 오해를 하게 만들고 결국은 시기와 질투로 죽이기까지 함을 기억하자.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관용의 태도로 용납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