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바울과 실라가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당당하게 전했다. 평범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특별한 지위의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주께 돌아와 회개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많은 사람이 믿기 시작할 때 시기하며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기몰이하고 무언가 잘 된다고 생각하기에 질투하는 것이다.
단순히 마음에 품는 질투가 아니다. 행동으로 괴롭히고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행동이다. 더 이상 복음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헬라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시기하고 질투한다.
시기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는 안 그런 척한다. 속으로는 매우 불편해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대신할 사람을 세운다.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시장 거리를 말한다. 시장 거리의 다양한 사람들과 물리적 힘을 행사하며 자신의 필요를 얻는 사람들이다. 폭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것을 강탈하고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이다.
불량배들이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한다. 바울과 실라가 곤란한 환경에 처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바울 일행의 행동을 흠집을 낸다. 그들의 복음 전도가 해로운 것이며, 성을 소동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혹세무민하는 사람들로 낙인찍은 것이다. 자기 필요를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악한 행동이다.
유대인들이 불량배를 동원하여 잔잔한 공동체에 큰 물결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흔드는 것이다. 지금은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갈 나쁜 사람이라고 음해하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자비량 선교를 한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처럼 공동체를 위해 살았다. 그런데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며 반역을 시도하는 무리로 매도한다. 시민들의 생각을 자극한 것이다. 반역이 일어나면 자신들까지 위험해진다고 생각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되면 거칠어진다. 누구나 불안하고 힘든 삶보다는 안정적이고 평안한 삶을 원한다.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성이 소동한 것이다.
악한 사람들은 악한 방법으로 악을 행한다. 아무리 선한 일일지라도 과정도 중요하다. 유대인들의 행동은 과정도 문제이고, 그 결과도 문제이다.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평소에는 제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한 길로 나아간다. 무릇 지킬만한 그 어떤 것보다도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매일 생각을 잘 지키며 선한 생각을 갖고 생활하기를 소망한다. 부패한 본성의 잔재가 세상의 흐름과 연합하여 신앙을 잡아먹고 흔들지 못하도록 언약의 말씀 안에 머물기를 기도한다. 항상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한다. 말씀이 마음 중심에 새겨지길 기도한다. 언제나 말씀을 묵상하며 읊조렸던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한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만 자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