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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9: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사울이 회심한 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한다. 갑작스럽게 변한 사울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당혹스러워한다. 그가 배운 학문과 그의 이제까지 행동을 볼 때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사람이 한순간에 변화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그를 아는 모두가 당혹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울의 변화가 얼마나 가는지 지켜 본 것 같다. 그래서 ‘여러 날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사울 죽이기를 공모한다. 전에는 서로 같은 편이었다. 마음과 뜻을 같이하며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관계였다. 이제는 사울을 변절자 취급한다. 정반대로 돌아선 사울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러 날이 지났다’라는 표현 속에 사울이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한 날이 여러 날 지났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러 날이 흘러도 계속하여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라고 복음 전도를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울의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었다. 말에 머무는 변화가 아니라 삶의 확실한 증거가 있는 변화였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한순간 반짝거리다 사라지지 않는다. 지속된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쉽게 마음을 바꾸거나 우리의 상태를 보고 포기하는 분이 아니다. 창세 전에 작정하신 대로 일하신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일어난 변화이다. 내가 변화되고 싶다고 해서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우리 안에 변화를 시작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주 예수의 날까지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모난 부분을 깎고 패인 곳은 메우고 온전해지도록 일하신다. 우리의 열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변화시켜 가신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산다.

오늘 내가 여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의 일을 하며 섬길 수 있음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때문이다. 그 사랑이 오늘도 여전히 나를 붙들고 변화시켜 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지실 때, 때로는 아프고 쓰라림이 있지만 견디어 내야 한다.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것이다.

비록 악한 자들이 나를 비난하고, 공격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죽일 것처럼 달려와도 당당할 수 있음은 나의 생사와 모든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 은혜 안에 서 있는 사울을 보면서 나를 바라본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주 예수의 날까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만지시고 다듬으실 때 힘들다고 돌아서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묵상하며 견디어 낼 하늘의 은혜를 구한다. 오랫동안 자리한 악한 모습,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진 모습이 쉽게 바뀌지 않으려 할 것이다. 어떤 저항이 있어도 끝까지 변화시키실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리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더욱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