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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4: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을 죽이려 흉계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다. 그 계획에 힘을 보태는 제자가 있다. 예수님을 팔 계획을 세운 가룟 유다이다. 틈만 보이면 자기 필요를 채우고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주님을 따른 제자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 있다. 당시 약자로 여겨지던 한 여인이다. 큰 은혜를 경험한 마리아였다(요한복음 11장). 그녀는 자신에게 소중한 귀한 나드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다. 건강한 사람의 한 해 봉급의 가치가 있는 향유이다.

여인의 행동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룟 유다는 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비난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면 더 가치 있게 사용했을 텐데 낭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을 좋게 평가하셨다.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라고 인정해 주셨다. “힘을 다해 헌신했다”라고 받아 주셨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장례를 미리 준비했다”라고 그녀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주셨다. 여인 정말 예수님의 장례를 예상하고 기름을 부었을까?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아마도 여인은 평소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기 좋아했다. 그녀의 관심사는 주님의 말씀이었다.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었고,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다. 다른 의도 없이 들었기에 말씀이 잘 들렸을 것이다.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이해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여인의 행동을 의미 있게 받아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며 향유를 부었다고 인정하셨다. 여인의 뜻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은 여인의 헌신을 귀하게 보셨다.

주님의 안목을 배운다. 어떤 의도이든지, 어떤 계획이든지 그것을 귀하게 받고, 좋은 일로 인정하는 것이다. 여인이 이제껏 한 행동을 보면서 서운하게 한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말씀을 믿지 못하고 나사로를 무덤에 안장한 일을 들춰내지 않는다. 지금 한 행동을 좋게 받으신다. 이런 주님의 관점과 마음을 배우길 소망한다. 이웃을 좋은 마음으로 품는 것이다. 포용하는 넉넉한 마음을 구한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웃과 그들의 삶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여인의 헌신은 힘을 다한 헌신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지 않았다. 인색한 마음이 아니라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다.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했다. 그녀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주고 베풀었을 때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베풀고 돌아설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랑이 아니다.

우리를 향한 가장 귀한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내어주셨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다셨다. 세상 그 어떤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다.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사랑이다. 그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증명해 보이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예수님이 하신 일을 나를 위한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여인이다. 그 사랑을 경험하고 베풀어 주실 영생을 생각하니 무엇이든 헌신하고 싶었다. 마음을 담은 헌신이며, 사랑의 헌신이다. 이 여인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여 순종하며 살기를 원한다. 사랑을 담고, 마음을 담아 전심으로 헌신하길 기도한다. 계산하고 마음에 숨겨진 욕망을 채우기 위한 종교 생활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 맡기는 청지기의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