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주님은 믿음의 공동체를 소중하게 다루신다. 공동체 안에는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함께한다. 러나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믿음으로 하나 된 사람들이 성도이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갖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이다. 그
이 말씀을 분명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 작은 자들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다. ‘작은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신앙적으로 연약한 사람이다. 사회적 약자이다. 그다지 영향력이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소외된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을 소홀히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에 대해 엄한 경고를 하신다.
매우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 하신다. 이웃을 넘어지게 하는 일을 심각하게 보신다.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한 몸 됨을 깨뜨리는 행위들이다. 우리의 공동체성을 깨뜨리는 행위이다. 이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못하게 막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행위이다.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자살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우리가 짓는 죄를 ‘심각하게 받으라’는 교훈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지 말고 차라리 내가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작은 자’이기에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다 소중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내가 죄를 지으면 관대히 대하고, 이웃이 죄를 지으면 엄격하게 대할 때가 많다. 주님은 반대로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이웃은 관대하게 품어주고, 나에 대해 엄격하게 대하라 하신다. 죄는 엄히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죄를 짓게 하는 손과 발을 하나씩 찍어버리고 장애인이 될지라도 그렇게 영생에 이르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이다. 그렇게 죄를 엄하게, 심각하게 다루라는 교훈이다.
다시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돌아본다. 여전히 오염되고 복음에서 멀어진 모습이 많은 삶이다.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다시 묵상한다. 십자가의 은혜로 깨끗하고 성결한 삶,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한다는 뜻이 무엇인가?(49절) 불과 같은 핍박, 고난이 성도를 결국 소금 치듯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할 것에 대한 말씀이다. 소금이 제물을 정결하게 하듯 고난이 성도를 정결하게 할 것이란 뜻이다.
‘불로 연단’ 하듯이 나의 삶이 정결케 되길 소망한다. 생활 중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손길을 마음에 새기기를 소망한다. 좀 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인격을 소유하길 소망한다. 내 인격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나길 소망한다. 함께하는 보배공동체가 이런 모습을 다듬어지고 세워지길 기도한다.
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묵상한다. 내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이 드러나고 십자가와 복음이 드러나는 삶을 묵상한다. 연약한 자를 소홀히 대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사랑으로 세워주는 삶을 묵상한다. 묵상에 머물지 않고 내 삶의 행동 원리가 되길 기도한다. 연약한 자를 품고 고난을 넘어 거룩한 공동체, 정결한 공동체를 이루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