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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12:6)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신앙생활 할 때 힘든 장애물 중 하나가 말씀대로 사는데 모든 일에 잘 안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고, 정직하게 살고, 거룩하게 살면 다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 풀리는 것이다. 만사형통이 아니라 만사 불통을 경험할 때이다. 더 억울한 것은 말씀대로 살고자 한 나에게는 어려움이 찾아오고 악인은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 삶을 조롱하고 비웃는 느낌을 받을 때이다.

욥의 답답함은 강도의 장막이 형통한 것이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가 평안한 것이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들에게는 재앙을 주셔야 맞다. 그런데 정반대로 악한 자들에게 후한 선물을 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고 구별되게 살고자 힘쓴 사람들을 낙심하게 만든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에 대해 불신하게 만든다.

욥의 고민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믿는데,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믿는데 불공평하게 일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벌을 내리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셔야 하는데 정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우리의 이해 안에 획일화하여 담을 수 없다. 믿음의 세계는 믿음의 논리가 지배한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특별은총도 있지만 일반은총도 있다. 각 사람 개인에게 맞춤식으로 은혜를 베풀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동일한 은혜를 주시는 일반은총도 있다. 자연 만물이 질서를 유지하고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일반은총 때문이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벌도 내리신다. 선한 사람에게도 해를 주시지만 악한 사람에게도 해를 주신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복도 주시지만, 고난도 주신다. 장수도 누리게 하시지만 단명하게도 하신다. 우리들의 논리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유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유한함이 하나님의 무한함에 부딪힐 때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분명한 가르침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에 서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하고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예외적인 일들을 통해 우리의 무지함을 드러내신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달해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 다 예측하지 못한다. 기상, 기후 예보를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 실력 발휘를 하여 예보하지만, 그 예보가 때로는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인간의 유한하고 연약함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자. 악인의 평안을 보면 낙심하지 말자. 때로 시간이 걸려도 하나님은 분명히 자기 백성을 책임지신다. 끝끝내 믿음의 사람을 세우신다. 얼굴을 들게 하신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도중에 포기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면 끝까지, 열매를 볼 때까지 나아가자. 땅끝까지 생명의 복음이, 모든 민족이 주를 볼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악인에게도 형통을 주시고 평안하게도 하신다. 악인에게도 후하게 주시는 분이시라면 자기 백성을 위해서는 더욱 후한 복을 준비하고 기다리실 것이다. 그 하나님을 맛보고 자랑하는 날이 반드시 있다. 그 날을 기대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