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1:13-15)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욥의 친구 소발이 욥에게 권면하는 말 가운데 한 부분이다. 소발은 욥에게 제안한다. “네가 만일 … 한다면, 그리하면 … 하리라”고 말한다. 만일로 시작하는 이 문장은 조건문이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이런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인과응보, 원인과 결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런데 소발의 설명은 은혜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자격을 갖추고, 조건을 갖추어서 주어지는 것은 땀과 노력의 결과이다. 은혜가 아니다.
은혜는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가장 좋은 예가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선물은 그것을 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상관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하는 선물이든지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 되려면 아무 조건 없이 받는 것이다. 만약 선물을 받을 자격을 갖추어 얻어내는 것이라는 선물이 아니라 대가에 따라 주어진 것이다. 성도는 은혜로 사는 사람이다.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만약 조건을 충족하여 주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우리들의 삶을 척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누리려면 정말 힘이 들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은혜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세상은 무언가를 누리려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누리는 것은 거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땀을 흘리고 노력해야 주어진다. 그러니 세상의 논리에 젖어있는 우리는 은혜를 잘못 이해한다. 소발도 같은 입장이다. 욥의 삶을 은혜는 빼고, 인과응보라는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은혜가 무엇인지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삶으로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성도가 된 것은 전적인 은혜이다. 하나님의 손길, 은혜가 우리를 다듬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어 간다. 그 은혜를 힘입어 우리는 신의 성품을 닮아 간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대리자들이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강하게 묻어나야 할 향기는 은혜이다. 우리는 은혜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인과응보가 철저하게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은혜로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길은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은혜로 살자. 각박한 세상의 삶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됨을 자랑하는 비결은 은혜로 사는 것이다. 은혜는 고장난 세상을 치유할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주님이 이 땅에 은혜로 오셨다. 아무 조건 없이 오셨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다.
성도가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고, 경건하게 사는 중요한 이유는 은혜에 대한 감사이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바울의 삶을 다시 되새겨본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오늘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은혜가 오늘을 살게 한다. 그 은혜가 결코 헛되지 않다. 그 은혜가 수고하게 한다. 그 은혜가 섬기게 한다. 그 은혜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한다. 그러니 내가 행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은혜의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내가 무엇을 행함으로 받아 낸 복이 아니라 값없는 은혜, 무조건적 은혜를 사모한다. 척박하고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 마음을 시원케 할 은혜의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