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 1: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우리가 살아온 길을 판단하는 날이 있다. 심판의 날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평가받는 날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을 살펴보면 벌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도 심판이 있다. 그러나 택하지 않은 백성과 차이점은 완전한 멸망이 아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은혜의 손을 펼치신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지만 택하지 않은 백성은 영원한 멸망에 던져지게 된다.
하나님은 형제의 어려움을 돌아보라 하신다. 형제 유다가 심판받는 재앙의 날에 방관하지 말라 하신다. 방관하는 것은 쳐다만 보고 실제적 도움을 주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그냥 보면서 즐기는 것이다. 불구경한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우리도 자연적으로 그곳에 무슨 일이 있는지 기웃거리게 된다. 은근히 마음이 따라간다. 호기심 때문이다. 우리의 본성이다.
우리의 본성은 오염되고 부패한 본성이다. 호기심이 단순히 둘러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어려움 겪는 사람과 관계를 생각하며 때로는 고소해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오바댜를 통해 들려주신다. 형제가 고통을 겪을 때 기뻐하지 말라 하신다. 인간의 숨겨진 본성은 은근히 형제의 고통을 즐긴다. 내가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에돔도 유다의 심판 때 약탈하고 악하게 행동했다. 하나님은 이런 에돔의 포학한 행동을 심판하셨다.
반대로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길을 지나가다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고 달려가서 도와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마치 강도를 만난 사람을 정성껏 돌보고 치료해 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분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믿는 사람인지 불신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픔을 당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보는 사회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작은 위안이다.
작은 위안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동할 때 드러난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그 구속의 은총을 힘입어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하신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일까 묵상한다. 하나님이 선물로 허락하신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다.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까지 작은 선행부터 하나씩 실천해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 이익과 유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생각하면서 행동하기를 기도한다. 상처를 입고 아파하며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 품을 내어주고 따뜻하게 손잡아 일으켜주며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기도한다.
원수라 할지라도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기뻐하지 말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원수일지라도 오히려 사랑하고 배려하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신다. 내 마음을 살핀다. 주님의 마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운다. 내 마음에 주님의 마음이 이식되기를 기도한다.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말하고, 주님처럼 행동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