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6:30) 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린 은이라 부르게 될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렸음이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신실하심으로 사랑하신다. 사랑을 표현하실 때도 다양하게 하신다. 어떤 때에는 당근을 주시며 격려하시지만, 어떤 때에는 채찍으로 훈계하신다. 우리는 당근만을 원한다. 때로 채찍을 만나면 당황한다. 잠시라고 걸어가던 길이 흔들린다. 제대로 가고 있는가 점검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가 스스로 점검하라고 연단의 용광로를 주신다. 연단이 반복될 때 계속하여 온도를 높여가며 단련하신다. 우리의 삶이, 신앙이 순순하게 제련되기를 원하신다. 모양은 은이고, 다이아몬드인데 온갖 불순물이 섞여서 가치가 떨어지는, 때로는 쓸모없는 광물 취급당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꼭 필요한 존재로 다듬어가기 위해 연단의 용광로를 주신다.
아무리 용광로의 불을 높여도 전혀 불순물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매우 당황할 것이다. 온도를 높여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자기 길을 고집한다면 심판이 기다린다. 하나님을 여전히 배반하고 자기 생각대로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 다양한 말씀을 주신다. 사로잡혀 있는 잘못된 생각을 깨끗하게 태워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우길 원하신다.
생각이 중요하다. 생각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우리는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내가 살 것인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인가?” 반복해서 부단히 물으며 점검한다. 오로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말씀이 이끄시고 교훈하는 대로 걸어가는 길이 믿음의 길이다. 생각의 차이가 있다. 같이 태어나는 쌍둥이도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 생각을 맞추는 것이 믿음의 길이다.
만약 이런 물음이 사라지고 없다면 우리는 단련되기를 거부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용광로 온도가 높아져도 불순물은 제거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물리적 힘을 가지고 우리를 강제하는 분이 아니다. 탈취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부르시는 음성에 겸손하게 반응하길 소망한다. 제사보다 순종을, 제물보다 믿음의 삶을 원하신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큰 평안을 약속하셨고, 장애물이 없는 삶을 약속하셨다. 장애물이 없는 삶, 그런 삶을 생각만 해도 좋다. 하나님 말씀과 은혜 안에서 하루라는 삶이 나를 단련하는 용광로가 되고, 하루라는 시간이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는 연단의 시간이 되길 원한다. 쓸모없어서 내버린 은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 119: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