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4: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심판을 당하는 이스라엘은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 그들은 세상살이에는 지혜로웠다. 그러나 믿음 생활에는 어리석었다.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모른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들 나름 지혜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붙잡으면서도 세상의 풍요와 행복을 줄 바알을 붙잡았다. 처세에는 뛰어난 것이다.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면서 둘 사이를 오간다.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선택하기도 하고 바알을 선택하기도 한 것이다. 눈치 게임을 하며 줄타기한 자기 행동이 지혜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신다.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 하신다.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라 불러도 마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생활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처럼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을 행한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
이런 삶을 살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펼쳐지는 일들과 선지자가 경고하는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듣고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취급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니 받아들일 수 없고,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이다.
미련하다는 것은 지능이 떨어지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별력의 문제이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과 사탄의 유혹을 분별하는 분별력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분명하게 교훈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을 분별하라 하셨다.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라(롬 16:19) 하셨다.
지혜로움, 명철함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인정할 때 내가 누구인 줄 알 수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깨달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명철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생긴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쳤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그 피조물들의 세계를 다스리시고 보존하시는 손길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다. 오묘하고 놀랍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가장 미련한 것이 인간의 가장 지혜로움보다 더 높고 뛰어나다. 하늘과 땅 사이이다.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차이이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알 때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이 살아난다. 영적인 미각이 살아난다. 우리를 소생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이다. 하늘의 지혜를 힘입어 선한 데는 지혜롭게 반응하고, 악한 데는 무지하게 반응하기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