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22: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사람이 잘못하면 선지자나 하나님의 사람이 깨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나귀가 사람을 깨우친다. 어리석은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자기 욕심을 따라 길을 가고자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 길을 막아선다. 그것을 보는 나귀가 가던 길을 멈추자 눈이 닫혀 보지 못한 어리석은 발람은 나귀를 때린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채찍질을 한다.
나귀는 주인을 살리고자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른 발람은 나귀를 때리고 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발람을 깨우치기 위해 나귀의 입을 여신다. 나귀가 자신을 때리는 발람에게 항의한다. 오늘날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내가 잘 섬겼는데 이제까지 내가 이렇게 행동한 적이 있었느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면 왜 그런지 확인해야 하지 않느냐 항의하고 있다.
성경에 동물이 인간에게 말을 한 경우는 딱 두 번이다.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발람을 깨우치는 나귀이다. 하나님은 말하는 나귀를 통해 우리가 동물보다 더 못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깨우치신다. 영안이 열려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영안이 열려야 한다. 하나님이 펼치시는 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세계를 보며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 우리 안에 탐욕이 가득하면 발람쳐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다양한 욕심들이 있다. 그 욕심이 선을 넘어서는 순간 문제를 일으킨다. 음식을 먹고 싶은 식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한 욕구이다. 그런데 그 식욕이 선을 넘어서는 순간 식탐이 되고 우리의 건강을 심각하게 흔들게 된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우리의 욕구가 다스려져야 한다.
우리를 가장 강하게 흔드는 세상의 유혹은 세속주의와 배금주의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데 “왜 너만 다르게 살려고 하느냐” 유혹한다. 그러나 성도는 다르게 사는 사람이다. 거룩한 삶은 구별되는 삶이다.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세상의 처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 때 거룩함이 살아나고 구별되게 살 수 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배금주의는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도전이다. 사람들은 돈이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믿고 있다. 돈이 넉넉하면 행복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어리석은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해한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돈을 사용하고 다스릴 때 돈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돈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어 가시기도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량 안에서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바라본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그 뜻을 찾으며, 그 뜻을 따라 살기를 소망한다. 지혜를 구한다. 나귀가 나에게 말하지 않아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