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3:16)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을 선포하신다. 그들의 화는 그들의 위선적인 삶의 결과물이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선, 외식하는 삶의 위험성을 재미있는 표현으로 깨닫게 하신다. ‘눈 먼 인도자’라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강한 역설이 담겨 있다.
‘눈이 먼 사람’에게는 인도자가 필요하다. 적어도 스스로 다닐 수 있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인도자가 필요하다. 인도견이든지, 사람들이 그들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눈 먼 사람이 인도자가 된다는 것은 역설 중의 역설이다. ‘인도자’ 역할은 ‘눈먼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❶어리석은 결정이다.
주님은 ‘눈먼 인도자’를 ‘어리석은 맹인’(17절)이라 표현하셨다.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역할과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면 어리석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생의 인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참된 인도자이신 주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이 인도자가 될 수 있다.
❷눈먼 인도자는 위험하다.
인생은 모험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눈먼 인도자는 결과가 거의 확실한 모험이다. 인생의 여정에게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❸어느 것이 중요한지, 크고 작은지 분별하지 못한다.
눈먼 인도자가 위험한 이유는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눈을 뜨고 있지만 눈이 먼 인도자라고 표현을 하신 것은 그들에게 분별력이 없다는 뜻이다. 성전과 성전의 금, 하나님과 재물, 목숨과 먹을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성전, 하나님, 목숨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반대로 가르쳤다.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❹분별력이 손상된 것은 우리들의 죄성 때문이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읽는 우리들의 이성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느끼고 깨닫는다. 그런데도 자꾸 덜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중요한 것을 포기한다면 분별력이 손상된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욕심, 탐욕 때문이다. 돈을 좋아하고 밝히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성전의 금이 크게 다가온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사람은 그 마음에 품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결과를 보면서 우리들이 내면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표현이 곧 행동이며, 삶의 현장에 나타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❺눈먼 인도자는 잘못된 행동을 낳는다.
고장 난 이성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다.
잘못된 행동이 옳게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그 행동이 옳다고 느끼며 산다. 그러니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다. 고장 난 이성을 바로 잡기 전에는 이런 결과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❻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이다.
주님은 마지막 심판을 ‘화’라고 표현하셨다. 영생이 아니라 영벌,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간단하게 넘어갈 주제가 아니다. 생사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일까?
➀선생, 지도자 되기를 조심해야 한다.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가르쳐야 한다. 부단히 자신을 말씀을 연구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깨달은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게 살아야 한다.
➁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고장 난 이성, 거짓된 본성, 돈을 좋아하는 탐욕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으로만, 내 안에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심으로만 넘어설 수 있는 장애물들이다. 먼저 새로운 본성이 내 안에 이식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다. 설령 내 인간적인 노력과 힘으로 만들어 내려 한다면 얼마 가지 못해 지치고 힘들어 쓰러질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위선적이고 외식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 생명의 살리는 길, 인류를 구속하는 길로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본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면 투명한 인격을 소유하기를 기도한다. 갈수록 속과 겉,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여 투명한 사람, 신뢰할 만한 사람, 맹세가 필요하지 않은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