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이혼의 문제를 가지고 와서 질문한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혼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혼 할 수 없는가?”는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명기 34장 1절에 말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었다. 엄격한 율법 해석을 하는 샴마이 학파는 ‘음행’이라고 해석을 했고, 좀 더 느슨한 힐렐 학파는 여인 밥을 태우거나, 심지어 다른 여인에 비해 예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이혼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친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다시 예수님께 나아와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질문한 것은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함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롭게 대답하신다.
예수님의 대답은 ‘창조-타락-구속’이라는 중요한 기독교 세계관의 틀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❶이혼은 하나님이 제정한 창조와 결혼의 질서에 위배된다. 본래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그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다(4-6절). 한 몸이다. 나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에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❷모세가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써주어 버릴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이다.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결혼과 가정생활을 왜곡시키고 이혼을 합리화한 것이다. 본래 이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창조의 질서가 아니다. 이혼은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이다. 자신의 필요와 욕심을 세우고, 하나님의 선물인 가정을 자아실현과 욕망충족의 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❸모세가 이혼을 허용했어도 ‘음행한 이유 외에는’ 이혼해서는 안된다. 이혼의 가능성 자체를 열어놓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즘은 이혼의 이유가 다양하다. “성격 차이가 있다”, “서로 살아온 문화가 다르다”, “이런 줄 몰라서 결혼했다”,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등 다양한 이유가 결혼 사유로 등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나이에 황혼 이혼을 선택한다. 좀 더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혼의 단면을 해부해 보면 우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타락한 인간 본성이 우리 사회와 가정을 왜곡시키고, 또한 해체하고 있다. 9절을 다시 보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 아내를 버리는 이유가 다른 데 장가들기 위함이다. 여러 가지 사유를 만들어 아내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를 찾아 장가드는 인간의 부패함을 지적하신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엄격한 율법 해석과 결혼과 이혼에 대한 교훈을 듣고 의외의 반응을 한다.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마 19:10) 제자들의 반응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아내를 돕는 배필로 여기고,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주님은 결혼과 독신생활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 주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마 19:11) 두 가지 오해를 말씀하신다.
오해❶ 독신생활이 결혼 생활보다 더 우월하다.
오해❷ 독신생활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더 좋다.
그렇다면 독신생활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는 무엇일까?
❶ 독신생활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❷ 독신생활은 아무에게나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❸ 독신 생활에 대한 서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❹ 독신 생활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버려라. ❺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한 독신 생활을 선택하고 헌신하는 것을 귀하게 여겨라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를 겪고 있는 사회에서 성경적인 가정이해 – 즉 결혼과 이혼, 그리고 독신 생활에 대한 바른 이해 – 는 천국의 모형인 가정을 아름답게 세우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이 가정, 천국의 모형인 가정,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진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인 가정. 가정에 대한 소중함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체 위기에 몰린 가정을 잘 지키고, 행복한 천국의 모형으로서 가정을 세워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