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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3:4)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의 아버지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아론과 함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아들들이 넷이 있었다. 그 아들 중에서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이 정한 신 불이 아니라 다른 불을 드렸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죄를 범한 백성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중보하는 역할이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항상 거룩을 유지해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게 된 것은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렸기 때문이다. ‘다른 불’은 ‘금지된 불’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제사하고, 어떤 불을 드려야 할지 알려주셨다.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으시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책망하고 심판하는 분이 아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불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할까? 몇 가지 해석이 있다.

성막 뜰 제단의 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불을 사용했다는 견해(레 16:12), 정해진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향을 드리다 죽었다는 견해(출30:9), 분향단에서 향을 피운 것이 아니라 지성소 안으로 향을 가지고 가서 죽게 되었다는 견해(레 16:2), 술에 취한 상태에서 향을 피우다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견해(레 10:8-11) 등이 있다.

정확하게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다. 성경이 확실하게 말하는 ‘다른 불’, 하나님께서 금지한 행동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이다. 죄의 삯은 죽음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함을 드러내야 할 제사장이 하나님 말씀과 다르게 행동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을 오염시키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을 자기 백성이 드러내며 살기 원하신다. 거룩함을 지키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지도해야 할 제사장이라면 더욱 거룩해야 한다. 거룩은 구별됨이다. 다르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다. 세상의 가치를 내려놓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자기 방법을 내려놓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다름을 느낄 수 있도록 사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온갖 우상이 만연해 있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 실제로 우상의 형상에게 가서 절하는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다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많이 있다. 돈(물질), 명예, 권력, 쾌락 등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거룩을 오염시키는 세상의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온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 마음에 생명의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과 마음이 거룩하길 소망한다. 이어 행동까지 거룩해져 하나님의 금하신 일,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과 다른 일들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