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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삼하 15:25)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피난길에 동행을 원한다. 하나님의 궤도 함께 메어 가기 위해 가지고 나왔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는 왕은 다윗임을 드러내기 위해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다윗을 위해 법궤를 메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한다. 법궤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낸다. 그런 행동을 하는 다윗의 고백이 무엇인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으면 법궤와 그 계신 데를 하나님이 보여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하나님의 뜻이면 지금이 압살롬을 피하여 광야 길로 나아가지만,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이란 고백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자신의 개인적 필요를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백성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법궤 앞으로 나아올 백성들을 생각하며 돌려보낸다. 개인의 필요와 평안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백성을 위해 기꺼이 돌려보낸다.

신앙생활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신앙적 행위들의 의미이다. 기도와 말씀 묵상, 전도와 섬김 등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이러이러한 일을 했으니 복을 달라며 요구하는 것이다. 신앙의 행위에 따른 반대급부를 원하는 것이다. 신앙의 행위는 하나님과 거래 조건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감사의 고백 행위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신앙적 공로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는가? 우리의 헌신과 봉사가 하나님과 나의 필요를 위해 협상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면 신앙이 아니다. 우리 뜻에 따라 움직여지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다. 투자가 아니라 감사와 헌신의 고백이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은혜를 은혜로 알고 마땅히 내 안에 맺어야 할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무언가 얻어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겸손한 마음으로 주께 엎드리고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오늘도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하게 보여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