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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4: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 다윗 왕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직 아버지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왕자로서 본이 되지 못한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

압살롬은 자신이 전혀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회개하지 않는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다. 요압에게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을 한다. 자신이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이 죄가 없는데 왜 아버지 다윗 왕이 자기 얼굴을 보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그러니 빨리 아버지와 자기 사이에서 중재하여 만남을 주선하라는 요청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부패한 본성이 죄를 짓게 만든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죄를 지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뉘우치고 회개하느냐 아니면 그냥 지나가느냐의 차이다. 압살롬도 분명히 형 암논을 계획 살해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자기 정당성을 아무리 되뇌고 또 되뇌어도 양심은 압살롬의 잘못을 드러냈을 것이다.

압살롬은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요압이 자기 초청에 응하지 않자 강제로 요압이 찾아오게 한다.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놓았다. 이런 행동도 문제이다. 초대에 응하지 않을 때는 이유를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목적을 위해 악행을 주저하지 않는다. 밭에 불을 놓아서 요압이 항의 방문을 하게 한다.

끝까지 뉘우칠 마음이 없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은혜를 입은 줄 알고 회개해야 한다. 자기 자리를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지켜야 한다. 압살롬은 뉘우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음을 품는다. 아버지 다윗을 은혜를 베풀 때 그는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왕좌에 앉을까, 아버지의 왕국까지 자기가 차지할 야망으로 불타오른다.

성도는 자기를 살피며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게 사는 사람이다. 매일 매 순간 스스로 살피지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르게 된다. 하루하루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자기 삶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보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 자녀답게 살기를 소망한다. 나를 살피고 회개하며 은혜를 구함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히 승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