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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삼하 12:22)

다윗은 숨기고자 한 죄가 드러나고,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철저하게 회개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심판을 예고하신다. 반드시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말씀대로 아이가 심하게 아파 앓아누웠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생각하고 내려놓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구나 생각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 평범한 기도가 아니라 특별한 기도를 드린다. 금식하며, 땅에 엎드려서 울며 간구한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아이를 살려주시길 구한다. ‘혹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살려 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혹시’의 은혜를 구한 것이다.

다윗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 아이가 아팠을 때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간절히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자신의 소원을 아뢴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아무 죄가 없는 아이를 살려주시길 기도한다. ‘혹시’의 은혜를 구한다.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죽었다. ‘혹시’의 은혜는 없었다. 다윗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죄가 자기 삶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혹시’의 은혜는 가끔 있는 것이며, 회개하고 기도한다고 하여 항상 응답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다윗은 이 일을 통해 생사화복과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적 열심과 노력만으로는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다윗처럼 방심하면 한순간에 넘어지기 쉬운 세상이다. 하늘의 은혜가 필요하다. 동행하시며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실제로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서 떠나면 행동의 중요한 기준이 무너진 것과 같다.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 보이며 살아야 할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만한 삶을 살지 않기를 소망한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은혜를 구하고 항상 말씀이 교훈하는 대로 마음과 행동을 관리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오늘 하루도 하늘의 은혜를 사모한다. 은혜 아니면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해 주시길 기도한다. 내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하늘의 은혜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루를 살기를 기도한다.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실 때 겸손히 말씀을 품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