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삼하 10:12)
암몬과 아람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나아왔을 때 요압은 함께 싸우는 사람들에게 ‘담대하라’ 명령한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백성들과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해서이다. 요압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해한다. 그러니 그 백성들이 사는 성읍은 당연히 하나님의 성읍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빼놓고 자신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매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이다.
성도로서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면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 모두가 사망에 이르지 않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기 원하신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기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우리의 소유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채우실 것이고, 무엇이 있어야 할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공급하실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의 모든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은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다. 실제 생활에서 이것을 인정해야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우리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면 분주하고 힘들고 잘 풀리지도 않는다. 가정 먼저 입술로 고백하고 선언하면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은근히, 그리고 교묘하게 우리 생각을 흔드는 사탄의 계략을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신다. 앉고 일어서는 것만 아니라 마음속에 품은 생각까지 다 아신다. 위에서 우리의 모든 상황을 다 내려다보시는 하나님께서 상황을 분석하시고 일하실 때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벽한 길로 우리가 인도받을 때 행복한 삶이 펼쳐진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살피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 삶을 계획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선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생기면 요압처럼 선포할 수 있다. “담대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길 원한다.” 이 고백이 오늘 나의 고백이 되고,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담대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