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3: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요압이 아브넬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다.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속여 안심하게 한 후에 그의 배를 찔러 죽인다. 아브넬은 다윗과 은밀한 평화 조약을 맺었다. 사울의 집안을 지지하는 이스라엘을 설득하여 다윗의 다스림 아래 들어오도록 할 것을 다짐했다. 다윗의 왕권을 위해 자기의 모든 힘을 바치겠다고 충성 서약을 한 것이다. 다윗은 아브넬을 위해 잔치까지 배설했다. 모든 사람이 보아도 다윗과 아브넬의 연합은 성사되었다.
요압이 다윗과 손을 잡은 아브넬을 죽임으로 사람들은 다윗을 오해하게 되었다. 요압은 다윗의 측근이며, 후에 군대 장관이 된다. 누가 보아도 다윗이 요압에게 명령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돌아가는 길을 쫓아가서 데려왔고, 특별한 은밀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가까이 가서 죽인다.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도록 무방비 상태를 만들어 죽였다.
헤브론 성문 안으로 들어가서 죽였다. 헤브론은 도피성 중 하나이다. 죄인일지라도 도피성으로 피하면 시시비비가 정확하게 가려질 때까지 보호해야 주어야 하는 곳이다. 은혜를 베풀어야 할 곳에서 보복한다. 요압은 하나님의 명령까지 무시하며 행동한 것이다. 요압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아브넬이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에 관한 보복 살해이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에도 자기가 심판자가 되어 스스로 원수를 갚았다.
다윗이 정치적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다윗은 이 일에 대해 자신이 무죄함을 증명해야 했다. 요압의 사적인 감정에 의한 것임을 증명한다. 다윗인 요압과 그 가문에 대해 저주한다. 그리고 아브넬을 위해서는 애가를 지어 슬퍼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한 모든 백성에게 애도하게 하고, 자신은 금식하며 슬퍼한다. 결국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며 온 백성이 기뻐한다.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백성들은 기뻐한다.
은혜를 베풀어야 할 곳에서 보복하는 요압을 보며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따라 움직이는 삶의 위험성을 배운다.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어렵다. 성도가 깨어 있어도 사탄은 넘어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아도 그 뜻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데 감정이 앞서면 하나님의 뜻도 오해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된다. 성도에게 위험한 상태이다. 죄를 짓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사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면 분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도가 행동할 때 더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것은 감정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이 교훈하고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죄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할 일이 아니다.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이 분명히 있다. 오늘도 그것을 잊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기를 소망한다. 순간마다 교훈해 주시고, 깨우쳐 주셔서 더욱 주께 가까이 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