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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는 경주를 하는 사람들이다.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세상살이로 지쳐 있는 우리에게 달갑지 않은 이야기이다. 경쟁, 경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또 어떻게 싸워야 하며, 어떻게 싸움이 이겨야 하나 걱정부터 앞선다. 지치고 힘들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다. 정말 지친 우리를 하나님이 다시 몰아세우고 계시는 것일까?

우리가 경주해야 하는 경주는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경쟁과 다르다. 무한 경쟁사회에서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이겨야 생존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기쁨도 있다. 그러나 믿음 생활에서 경험하는 경주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경주이다. 우리 앞에, 각각의 사람에게 허락하신 경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경주가 다르다.

세상의 경기는 모두가 함께 달려 1등과 2등을 가려내는 경쟁이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이런 경쟁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상처나 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실 리가 없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이 땅에서의 삶을 말씀하신다. 우리 각 사람에 맞는 경주를 주셨고, 완주하기를 원하신다. 이 경우에는 1, 2등이 있을 수 없다.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경주를 하기에 완주하면 모두 1등이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 낼 수 있을까?

① 우리에게 많은 증인이 있음을 기억하고 경주해야 한다.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문맥을 따라 읽으면 이 증인들은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이다. 우리 앞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선배들이다. 그런데 그런 증인들이 ‘허다’하다. 수없이 많은 증인이 있다는 뜻이다. 부인할 수 없이 확실하다는 말씀이다. 이들의 삶과 그 결과를 보면서 믿음의 완주를 하라 권면하신다.

예수님께서 제자훈련을 하실 때 ‘함께 생활’하는 방식을 선택하셨다. 더불어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격려이며, 가장 확실한 훈련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증인을 주셨다. 믿음의 동역자들이다. 그들이 우리들의 증인이 되어 준다. 함께 손을 맞잡고 믿음의 경주를 하길 소망한다.

②벗어버릴 것을 벗고 경주해야 한다.

경주할 때 경주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무거운 것이다. 거추장스럽게 우리들의 행동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영적 체중조절을 잘해야 한다. 영적 비만에 걸리지 않도록 배운 말씀을 삶을 살아내야 한다. 먹은 것에 비해 활동이 적으면 비만할 수밖에 없다. 말씀 안에서 배우고 확신한 것을 삶으로 살아낼 때 영적 체중조절을 할 수 있다.

우리를 옭아매는 죄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자주 우리 발목을 붙잡고 넘어지게 만드는 것들이다. 항상 사탄은 우리들의 약점을 보고 그것을 공격하여 넘어지게 한다. 나만의 약점, 아킬레스건이 있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되거나 염증이 생기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사탄은 우리들의 아킬레스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곳에 문제를 만들어 낸다. 믿음의 경주를 방해한다. 나의 약점을 말씀과 주님 베푸시는 은혜로 넘어서자.

③인내로써 경주해야 한다.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견디어 내는 것이다.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반드시 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들이 포기하고 싶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사탄이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전술전략을 파악해야 한다. 환경이라는 메트리스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 위에 누우면 편하고, 그 아래 깔리면 숨이 막힌다. 환경을 믿음의 안경으로 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위에 편히 누울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때 여유가 생기고 인내할 수 있다.

오늘도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길 소망한다. 우리 주님은 믿음의 주(창시자, 완성자, 챔피언)이시다. 우리 경주를 가장 완벽하게 완주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다.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주께 고정되어 주를 닮아 살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