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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흔들려서 파선할 위험성이 있는 배를 안전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치가 있다. 그중 하나가 닻이다. 닻은 바닷속 깊이 내려서 단단하게 고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믿음 생활에서 그런 닻 역할을 하는 것이 소망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아 누릴 것을 소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안식, 참된 안식으로 데려가실 것이란 소망이다.

이 소망이 튼튼하고 견고한 닻이 되어서 우리를 휘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앞서 들어가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곳에 들어가셨다. 우리가 가진 소망을 이루어주실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피난처를 찾아 헤매는 우리를 위해 든든한 보증이 되어 주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소망은 결코 폐기되거나 끊어지지 않는다. 영원한 약속이며, 주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품어야 할 소망이다.

닻은 희망의 상징이다. 그리스에서 발굴되는 헬레니즘 시대의 비문이나 동전에 닻이 새겨진 경우가 잦은데 희망을 담은 것이다. 닻은 우리를 위해 앞서가신 에수님께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장소인 하늘에 내리셨다. 하나님의 보좌와 든든히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헌신과 맞닿아 있다. 이 줄은 하늘로부터 땅에 맞닿아 있다. 믿음의 사람들이 앞에 있는 소망을 잡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구약의 성도들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생명을 보호하도록 허락하신 제도가 도피성이다. 도피성은 피난처 되신 예수님의 모형이다. 도피성은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도피성은 항상 앞에 존재한다. 뒤에서 복수하려는 사람이 그를 잡기 위해 좇아 온다. 위험한 순간을 겨우 넘겨 도피성에 도착한 사람은 그제야 숨을 내쉬며 이제는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큰 안위를 받게 하시는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암벽등반 대원들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의 닻줄을 굳게 붙잡고 힘차게 살아야 한다. 지금도 이 닻과 닻줄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공동체가 있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유대인의 소망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메시아 신앙은 큰 닻줄과 같은데 매듭이 없다. 그 줄은 시내 산 위의 바위에 고정되었고, 이 세상의 토대를 고정하고 있는 말뚝과 연결되어 있다”

소망의 닻줄은 시내 산과 세상의 토대를 연결하고 있다. 히브리서 설교자의 소망의 닻줄은 그리스도를 통한 모든 창조와 그리스도 안의 모든 구원을 연결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하늘에 내려진 닻이라고 할 때 히브리서 저자는 광야의 회막에서 그 이미지를 가져온다. ‘휘장 안’으로 표현한다. 회막에서 휘장 안의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증거한다(20절).

예수님이 지성소에 들어가심을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며,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구속하여 주신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에서 참된 기쁨과 사랑을 경험하며 매일 안전하고 든든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시 91:1)가 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