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6: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분명히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일까 확인하고 싶어 한다. 젖 나는 암소를 선택하여 새 수레를 끌게 한다. 그 수레에 여호와의 궤와 속건제의 제물을 함께 실어 보낸다. 그리고 그 수레가 벧세메스로 가는지, 아니면 어린 새끼들에게로 가는지 지켜본다. 암소는 울면서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간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이 밝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정말 함께하시며 일하신 것일까” 질문이 생길 때가 있다. 조금 의심이 생길 때가 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는다. 그리고 실제 내 생활에 찾아오시고 깨닫도록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에는 정말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일까 되묻는 경우이다. 우리의 믿음이 아직은 연약하기에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감에 의해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들의 유한한 경험의 세계에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분명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오늘도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신다. 자기 자녀와 동행하시며 도와주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시다. 나를 다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힘이시다.” 진리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은 동일하시다.
보고 경험하고 느껴서 신뢰하고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오감은 가끔 우리를 속인다. 우리의 경험보다 더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 계시인 말씀을 주셨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도록 초청을 하고, 그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권면한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바르게 자리 잡아야 우리 신앙이 건강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을 그냥 우연으로 생각하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 하나님이 일하시는 손길을 보면서 감사할 수 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손길을 똑똑히 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