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나 3:1)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150년 전에는 요나 선지자를 통해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다. 이제 나훔 선지자를 통하여 완벽한 심판을 말씀하신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피로 물든 성’이라 하신다. 그곳에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가 건강하게 서기 위해서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거짓은 불신 사회를 조성한다. 관계가 깨질 수밖에 없다. 포악은 약탈과 강탈을 뜻한다. 약한 자를 멸시하고,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빼앗는다. 탈취는 맹수가 먹이감을 찢듯 약한 자를 찢고 삼키는 행위이다. 단순한 물품 탈취를 넘어선다. 생존 의지마저 빼앗는 것이다.
니느웨를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4절)에 비유한다. 겉으로는 힘이 있는 나라 행세를 하며 평화를 조율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속임수를 사용하여 약한 나라를 미혹하고 넘어뜨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겉과 속이 다르고, 이웃을 속이며 넘어뜨리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성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랑과 격려와 배려와 나눔이 있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사랑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낙망 가운데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소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눈여겨보신다.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기억하신다.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절망 가운데 다시 일어설 힘이며,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이다.
강자의 횡포가 가득한 ‘피의 성’이 아니라 힘없는 약자가 기쁘게 살 수 있는 ‘사랑의 사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성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인간의 생각과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묻어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반대로 포악하게 행동하며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기다린다. 이웃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 자신을 위해 사는 이중적 삶은 심판받게 되어 있다. 내 안에 숨겨진 이중성을 회개하고 겉과 속이 일치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 겸손과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고 돌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