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세례 요한의 고백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다. 광야의 길을 곧게 하는 소리였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소개하는 역할이었다. 그는 자신은 조용히 외치고 사라지는 소리이지만 소리의 실체이신 예수님은 갈수록 더 증거되고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를 믿음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을 알았다.
세례 요한의 행동을 결정한 것은 그의 소명의식이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목적의식이 분명했다.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알아야 그 부르심의 소망 안에서 살 수 있다. 자꾸 경계선을 넘어서고 이웃의 것을 탐하는 것은 소명의식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넘어서지 말아야 할 경계선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았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 생명을 허락하셨는가? 내가 감당해야 할 소명은 무엇인가? 내 역할은 무엇인가? 나의 행동과 언어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 보이길 원하는가? 이 새벽 조용히 되물어 본다.
우리 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소명을 따라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분명히 인정해 주실 것인데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 알아주길 원하고,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한 일들을 잘 포장하고 드러내기 위해 고민한다. 존재감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싫어한다.
세상의 문화와 흐름 속에서 흔들리고 갈 길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세례 요한의 삶은 좋은 본이다. 우리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결코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베풀어 주신 것을 우리가 사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렇게 할 마음까지도 하나님이 주신다. 그래서 성도는 은혜로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 나를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감추어지고 대신에 예수님이 드러나길 소망한다. 내가 흥하고 주님이 쇠하는 삶이 아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주의 뜻을 살피고, 주신 소명을 따라 하루를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