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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20: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베냐민 지파의 악행으로 인해 첩을 잃은 레위인은 그 시체를 조각내어 이스라엘 전 지역으로 보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분노를 일으켜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때 레위인이 모여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요구한 것은 이런 악행을 행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들의 의견과 방책을 요구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 보다는 자기 생각과 판단을 한다. 인간적인 의견과 방책을 찾고, 도와줄 사람들을 동원하며 문제해결을 하고자 한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자기는 문제가 없고 베냐민 사람들만 문제라는 것이다. 인본주의가 결국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준다.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자기중심적이 된 증거가 있다. 레위인이 첩을 둔 것, 첩의 시체를 조각내는 것은 아무런 언급도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증언한다. 이기적인 증언이다.

레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사명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증언하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게 해야 한다.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인으로 살도록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레위인 자신부터 그렇게 살지 않는다. 거룩해야 할 레위인이 세상에 속한 채 살아간다. 자신이 문제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문제는 개인의 가정불화였다.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고 있다. 자기를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할 순간에 오히려 보복을 위해 인간적 계획을 수립하고 행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기 원하신다.

성도는 날마다 주를 의지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다. 주와 동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 자기성찰과 회개는 사라지고 자기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동정심을 얻으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성탄의 계절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사랑’이다. 우리를 향한 아낌없는 사랑이다. 자신의 내어줌이다. 남김없이 내어주는 섬기는 사람이다. 높아지는 삶이 아니라 낮아지는 삶이다.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삶이다. 오늘 내가 회복할 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새기고 주 앞에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