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9: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레위인과 첩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성전에서 귀한 사역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야 할 사람들이다. 구별되며 도덕적으로도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다. 그런 레위인이 첩을 맞이한다.
아내가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여인을 집 안에 들이는 것이다. 아내와 첩 사이에 많은 갈등과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레위인은 이런 선택을 한다. 자기의 만족과 필요를 위해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레위인이 살았던 지역은 에브라임 산지 구석이다. 에브라임은 미가의 집을 비롯하여 우상숭배가 자행되던 곳이다. 그는 산지 구석에서 살았다. 구석진 곳, 다른 사람의 관심이 별로 집중되지 않는 곳에서 살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숨어 사는 사람이다.
레위인이라면 앞장서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조용히 누구의 관심도 없을 에브라임 산지 구석 후미진 곳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첩을 두며 사는 삶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후미진 구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세밀한 관심을 두고 살피신다. 숨어 이름조차도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레위인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내신다. 우리가 숨어 살 수 있는 곳은 없다. 땅끝에 가서 숨어 살아도 하나님은 분초의 시간도 놓치지 않고 살피신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고 애쓰는 힘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나는 내 이름과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레위인과 첩’이라는 조화가 어색하듯 내 삶에 어색한 것은 무엇인가 살핀다. 성적 타락을 부추기는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성도로서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주신 부와 특권과 은혜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 나를 위해서, 내 필요를 채우고,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는가? 어리석은 행동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