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5:28)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시스라의 어머니가 시스라를 기다린다.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넜는데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 더디 오는 것을 불안해한다. 시선은 창문에 가 있다. 창살을 통해 밖을 바라본다.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그녀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어가 ‘어찌하여’이다. 두 번이나 반복한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올 때가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써서 위안을 삼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의 상황에서 발생할 수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시스라가 노략물을 얻기 위해 늦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작정한다. 어머니의 아들을 향한 마음이다.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불안함을 떨치기 위해 애써 선택한 상상이다. 최악의 상황보다는 최선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헛된 기대, 허황된 기다림이다. 하나님은 이미 시스라를 심판하셨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생각지 않고 펼치는 상상은 허황된 것들이다. 언젠가 사라질 것들이며, 때론 이미 결정된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기도 한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시스라가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죽게 되어 있는 전쟁이었다. 그 뜻을 모르니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 생각하고 나간 것이다. 친분이 있는 헤벨의 집을 찾아 들어간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친 몸을 위로한다. 편안하게 잠을 잔다. 그런데 그것이 죽음의 잠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계속하여 죽음으로 가는 악수를 선택하고 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지 않으면 시스라 같이 살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겸손히 말씀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매 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하나님이 가지신 계획을 이해하고 순종하며 따르길 소망한다.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아무리 우리가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데려오기로 작정한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 한다. 복음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을 열리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