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24)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요셉 가문에 벧엘을 정복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벧엘을 치기 위해 올라갔다.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눈앞에 벧엘을 두고 정탐꾼을 보낸다. 정탐꾼들은 성읍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제안을 한다. ‘우리에게 성읍의 입구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약속한다.
약속대로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낸다.(25절) 지혜로운 선택과 탁월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계산하지 않은 이해이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다. 입구가 어디인가, 얼마나 지혜롭게 싸우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멸하라 말씀하셨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더러 이 장면을 기생 라합의 이야기와 비교한다.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있었다. 여리고 사람과 달리 믿음을 가지고 정탐꾼들을 맞이한다. 길 가는 사람이 아니다. 성읍 입구를 가르쳐 줌으로 생명을 구한 것은 정탐꾼들의 선대이다. 인간적인 휴머니즘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묘하고 티 나지 않게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을 섞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쫓아내지 못한다.
강성한 후에도 타협을 한다. 강제 노역을 하는 사람으로 붙잡아 둔다. 가나안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않은 것은 힘의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이 없었다. 믿음의 결여가 문제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다듬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 모시는 삶이 믿음의 삶이다.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해 주소서! 오늘을 여는 나의 기도이다. 위장된 순종은 말 그대로 위장이다. 순종이 아니라 불순종이다.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 마음을 담은 순종을 원하신다. 믿음 흔들리지 않고 주의 말씀을 오롯이 따라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