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5:29)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성막에 필요한 재료들을 마음에 자원하는 사람들이 드리게 한다. 누군가 권유하거나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여 드리게 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체면치레로 드리게 하지 않으신다. 기쁨으로 드리게 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드릴 것을 찾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린다.
자원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감동되어야 한다. 마음이 감동되는 것은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있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자원하는 것도 외부의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두 단어 모두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백성들이 헌신하고 움직인 것이다. 어떤 외부의 자극이 백성들을 움직였는가? 하나님이 백성들의 마음을 만지셨다. 하나님의 영,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마음을 움직이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신다.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은혜를 따라 움직이게 하신다.
강요나 협박이 아니라 감동과 소원을 가지고 헌신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평생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죽을 인생이었다. 어떤 특별한 자격이 있거나 유용하게 사용할 곳이 있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어떤 조건도 요구하거나 따지지 않고 구원해 주셨다. 허물과 죄로 죽을 인생들인 우리도 그렇게 구원해 주셨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불러주시고, 예배하는 우리를 위해 헌신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에 진정성이 담긴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은 성령을 통해 주어진다면 항상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불편하지 않도록 거룩하고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 먼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구별된 삶을 통해 성령 하나님과 동행할 때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 수 있다.
자원하는 마음을 우리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barometer)’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은혜를 주셨을 때 곧바로 나를 살피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헌신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아무런 헌신없이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고, 만사형통하기만을 소망한다면 신앙생활을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길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을 베푸는 삶이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겸손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신을 살필수록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오염된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부분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을 보면 불편한 마음부터 생긴다. 새벽을 깨우며 말씀을 품고 기도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다듬어주시고 변화시켜주실 기도할 뿐이다.

